안녕하세요. 한여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연일 더운 날씨입니다.
6월의 금융이야기는 뜨거운 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이야기 입니다. 하나씩 만나 볼까요?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효과적 달성을 위해 1962년 6월 10일 ‘긴급통화조치와 긴급금융조치’를 단행하게 됩니다. 이는 철저한 비밀 보안속에 한국은행 총재조차도 몰랐다고 하고 그 당시 5명의 화폐개혁 준비반은 “기밀 누설 시 총살형도 감수한다”는 선서까지 했다고 하니 군사독재 시절이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이 긴급통화조치에서 환 표시가 원 표시로 변경되고, 환의 유통과 거래가 금지됩니다. 또한 구권과 구권으로 표시된 각종 지급수단을 6월 17일까지 금융기관에 예입되도록 하였고, 후속조치로는 금융기관의 신규예금을 포함한 기존 예금등도 봉쇄계정에 동결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개혁은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오는데 생활비에 한해 그것도 6월17일까지 10대1의 비율에 따라 가구당 한 사람에게 5백 원 한도로 바꿔준다고 하니 충분하지 않은 한도로 인해 사회적 불안감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특히 이날 통금시간까지 앞당겨 지면서 일찍 귀가하려는 시민들이 택시를 타지만 택시 기사들은 구권은 소용없다고 승차거부 하는 일도 일어나고, 각종 생필품 가게들은 늦은 시간까지 사재기 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북세통을 이뤘다고 합니다.
군사정부의 급작스럽게 시작된 화폐개혁은 미국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예상처럼 음성자금이 드러나지도 않고 사회적 불안과 혼란만 야기시켜 결국 예금동결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함으로써 실패한 사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시도와 도전들이 전쟁직후 경제살리기 라는 슬로건 아래 잦은 실패와 성공의 모습으로 우리 역사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4년 6월 당시 조흥은행, 동화약품공업, 한국상업은행, 삼양사 등 200개 상장사의 시가총액을 지수화 해서 처음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대한민국의 격변기와 맞물리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약 2/3가량의 기업들이 1998년 외환위기, 1999년 대우사태,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가대란 수준의 큰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변화를 겪게 됩니다.
4차 산업혁명 등 또 다른 대 변혁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떤 기업이 남고, 혹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지 아니면 새롭게 진화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세상의 흐름을 판단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